중국 역사를 보면, 신기한게 있다.
청나라 당나라 5호16국 등등... 진짜 이민족 통치가 수백년씩 지속됐다. 하지만 결국 돌아왔다.
로마제국과 한나라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규모로 존재했다. 둘 다 무너졌다. 그런데 이후가 완전히 다르다. 로마 멸망 후 유럽은 1,500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통일되지 않았다. 중국은? 분열할 때마다 다시 합쳐졌다. 삼국시대 → 진나라 통일. 5호 16국 → 수나라 통일. 5대 10국 → 송나라 통일. 이게 대체 왜 가능했을까?
대부분 "중국은 원래 하나의 민족이니까"라고 생각한다. 틀렸다. 중국은 원래 하나가 아니었다. 춘추전국시대를 보라. 언어도 다르고, 문자도 다르고, 도량형도 다르고, 심지어 마차 바퀴 폭도 달랐다. 진시황이 이걸 억지로 통일했다. 그런데 진나라는 15년 만에 망했다. 진시황의 통일은 껍데기였다.
진짜 통일을 만든 건 한나라다. 400년이다. 이 400년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한나라가 남긴 첫 번째 유산은 '정체성'이다. 한나라 400년 동안 사람들은 스스로를 '한인(漢人)'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 중국의 다수 민족이 왜 '한족'인가? 한나라 때문이다. 진나라가 만든 건 영토 통일이었다. 한나라가 만든 건 정체성 통일이었다. 영토는 금방 갈라진다. 정체성은 천 년을 간다.
두 번째 유산은 '시스템'이다. 유교 기반 관료제, 과거제의 원형, 군현제. 한나라가 이 시스템을 400년간 작동시켰다. 덕분에 "천하는 하나의 황제 아래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치되어야 한다"는 관념이 DNA처럼 새겨졌다. 분열은 비정상이고, 통일이 정상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세 번째 유산이 가장 강력하다. '문자'다. 한나라 때 한자가 제국 전역에서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광둥어와 북경어는 서로 못 알아듣는다.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만큼 다르다. 그런데도 중국인들은 자신이 '같은 민족'이라고 느낀다. 한자가 이걸 가능케 한다. 말은 달라도 글은 같다. 같은 사서삼경을 읽고,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같은 고사성어를 쓴다.
유럽은 왜 통일이 안 됐을까? 로마가 남긴 건 라틴어였는데, 라틴어는 말과 글이 같이 변했다.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로 갈라지면서 정체성도 갈라졌다. 한자는 말과 글이 분리되어 있다. 발음은 달라져도 문자는 그대로다. 천 년이 지나도 공자의 논어를 읽을 수 있다. 이 연속성이 통일의 자력(磁力)이 된다.
(물론 나는 지정학적 이유가 더 크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나중에 자세히 다루려 한다)
더 재미있는 건 이민족마저 이 시스템에 흡수됐다는 것이다. 몽골이 원나라를 세웠을 때, 만주족이 청나라를 세웠을 때, 그들은 중국을 정복한 게 아니다. 중국에 정복당한 것이다. 한나라의 시스템이 너무 효율적이어서, 정복자들이 피정복자의 방식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만주족 청나라 황제들은 유교 경전을 공부하고, 한문으로 조서를 내렸다. 정복자가 피정복자의 언어로 통치하는 아이러니.
로마의 유산은 박물관에 있다. 한나라의 유산은 지금도 작동 중이다.
중국이 분열할 때마다 통일되는 건 운명이 아니다. 한나라 400년이 심어놓은 코드가 2천 년째 실행 중인 것이다. 하드웨어는 부서져도 소프트웨어는 살아남았다. 한나라는 사라졌지만, 한나라가 만든 '중국'이라는 개념은 영원히 리부팅된다.